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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정보의 미스터리

이런 상상을 해보라. 도대체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주소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며,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고, 자산을 손쉽게 돈으로 전환할 수 없으며, 주식을 발행해서 소유권을 분할할 수 없고, 자산을 기록하는 기준이 확립되지 않아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없으며, 재산을 관리하는 법이 지 역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아주 이상한 나라가 있다고 말이다. 이 이상한 나라는 바로 개발도상국가들이나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이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국가들에서 인구의 80 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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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80 퍼센트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절망적인 빈곤에 시달 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총체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제도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일반인들이 생각하 는 것보다 실제로 훨씬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소유한 자산은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시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집트의 나일 힐튼호텔 정문 을 나서 카이로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에 당신은 팩스와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항생제가 있는 문명의 세 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카이로의 시민들도 이 모든 것을 접하고 있다. 진정 당신이 떠나온 곳은 재산 권에 따라 합법적으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부가적인 부를 창출하기 위한 담보와 저당 은 어쩌면 당신이 대단한 부자라고 생각하는 카이로의 시민들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카 이로의 외곽 지역에는 일부 극빈자들이 거주하는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명칭의 공동묘지 구역이 있다.

그러나 카이로의 전역이 사실상 죽은 자들의 도시나 마찬가지다. 가치를 극대화해 활용할 수 없는 죽은 자본과 자산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곳에는 자본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제도, 다시 말해 노동과 자산을 바탕으로 제 3 자에게서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황무지를 개척해서 사회를 이루었던 19 세기 미국의 상 황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 당시에 미국은 영국에서 대단히 복잡한 토지법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뒤얽힌 혼란스러운 토지 체제까지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똑같은 토지가 영국 국왕에게서 무상으로 사용 허가 를 받은 사람과, 인디언 부족에게 사들였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주의회에서 봉급의 형태로 받는 사람에 게 동시에 주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그 토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전역은 저마다 경계를 설정하고 땅을 경작하고 집을 짓고 토지로 전환해 사용하는 이민자들로 가 득했다. 그들은 정부가 이 모든 권리를 부여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관행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 시기 가 바로 개척자들의 시대이자 ‘서부시대’였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가 혼란했던 한 가지 이유는 대부분 무 단점거자들이던 개척자들이 “비록 공식 문서도 없고 독단적으로 설정한 경계일지라도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 토지의 가치를 인정받고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1 그들은 일단 토지를 점 유하고 집과 농장을 지어 개발하면 그 토지는 자신들의 소유가 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전혀 다른 견해를 보였다. 공무원들은 군대를 파견해서 농장을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했고, 정착 민들은 그들과 맞서 싸웠다. 군인들이 떠나자 정착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재건하고 다시금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런 암울했던 과거가 현재 제 3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혁명적인 인구 이동, 도시의 폭발

1950 년대 이전에 제 3 세계 국가들은 대부분 18 세기 유럽인들이 적합하다고 여겼던 방식으로 조직된 농 업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극소수의 대지주들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했는데, 그들 가운 데 일부는 기존의 권력자들이었고, 나머지는 식민지 농장주들이었다. 도시들은 그 규모가 작았으며 산업 의 중심지가 아닌 시장과 항구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그곳은 엄격한 법과 규제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 을 보호하는 일부 상인 계층이 장악하고 있었다.

1950 년 이후 제 3 세계에는 1800 년에 유럽에서 발생했던 사회적·경제적 혼란과 유사한 경제혁명이 일어 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약품과 공중보건 체제가 도입되어 유아 사망률을 낮추고 평균수명을 연장한 것처 럼,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되면서 농촌 노동력의 수요가 감소했다. 순식간에 수십 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 파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매혹적으로 소개된 내용을 듣고 여러 도시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로 물밀듯 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도시들에서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79 년 이후에 중국에서는 무려 1 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파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1950 년부터 1988 년 사이에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Port-au-Prince)의 인구는 14 만 명에서 155 만 명으로 폭증했고, 1988 년에는 무려 200 만 명에 육박했 다. 이 엄청난 인파의 3 분의 2 에 달하는 사람들이 허름한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규 모 인파의 도시유입 현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1973 년부터 이미 새로운 도시 이주민들에 대해 절망 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모든 현상은 마치 도시를 붕괴할 듯한 무서운 기세로 일어나고 있다. 하수시설은 빗물과 오물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며 인구는 위생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한정된 지역들에 집중되고 있다. 데살린 거리는 사실상 노점상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 도시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2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당시에 ‘경 제발전’과 관련된 여러 이론들은 농촌의 근대화를 이루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20 세기를 앞 둔 시점에서 소작농들은 도시로 이주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반발을 무릅 쓰고 수천 만의 인파가 도시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합법적인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거대한 법의 장벽에 직면했다. 이 새로운 도시 이주민들이 합법적인 거주지를 얻거나 공식적인 사업을 시작하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도시에서 만난 장애물, 법 체제

이주민들의 힘겨운 삶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연구팀과 함께 리마 외곽 지역에 조그만 의류 공장을 설립 하기로 했다. 우리의 목표는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서류를 작성하고 페루 정부 의 법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허가를 얻기 위해 리마 중심지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기 다렸다. 우리는 날마다 여섯 시간씩 그 일에 매달린 끝에 289 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었다. 그 공장은 고작 직원 한 명뿐인 아주 영세한 규모였지만 사업자등록에 지출된 비용은 직원의 한 달 최저임금보다 31 배나 많은 1,231 달러였다. 페루에서 국유지에 집을 짓는 건축 허가를 얻으려면 6 년 11 개월 동안 52 개소의 관공서를 드나들며 207 단계에 달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국유지 에 속하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728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버 스나 택시로 개인사업 면허를 취득하는 데도 26 개월 동안 관공서를 드나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연구팀은 여러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 지역들 에서 나타나는 장애들은 페루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사 유지든 국유지든 도심지에 집을 짓고 합법적인 소유권을 획득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이웃사람들 과 함께 조합을 만들어 국가 주택자금 프로그램(state housing finance programme) 요건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총 53 개소에 달하는 관공서와 사설기관에서 168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데, 그 기간은 대 략 13 년에서 25 년이 소요된다. 그것도 국가 주택자금 프로그램에 충분한 자금이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가능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농업 지역’에 집을 지었다면, 그곳을 거주 지역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추가 적으로 2 년 동안 13 개소의 관공서에서 45 단계에 달하는 절차를 모두 처리해야만 한다. 이집트에서 국유지에 속하는 사막 지역에 정식으로 토지를 구입하고 등록하려는 사람은 31 개소에 달하 는 관공서와 사설기관에서 최소 77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지역에 관계없이 5 년에서 14 년이 소요된다. 과거에 농업 지역이었던 곳에 집을 지으려면 6 년에서 11 년 동안 관공서를 드나들어야 하는데, 그 기간은 상황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무려 470 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 국민들이 불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먼저 집을 지은 후에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집을 철거당하고, 엄청난 벌금을 물고, 10 년 동안 형무소 신세를 지는 위험을 감 수해야 한다.

아이티에서 평범한 시민이 국유지에 합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먼저 정부에서 5 년 동 안 토지를 임대한 후에 매입하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들은 여러 관계자들과 작업하면서 이런 임대 허가 를 얻는 데 평균적으로 2 년 이상 여러 관공서를 드나들며 65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 다. 고작 5 년 동안 토지를 임대하는 권리를 얻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토지를 매입하기까지는 다시금 12 년 동안 111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아이티 에서 합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총 19 년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오랜 시련이 있다 고 해서 반드시 그 토지가 합법적인 자산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사한 모든 국가들에서 ‘합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합법적인 허가를 받는 것’만큼이나 어 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주민들은 법이 규제하는 것만큼 법을 많이 어기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법이 통제하는 체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1976 년에 베네주엘라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3 분의 2 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설립된 기업에서 근무했지만 현재 그 비율은 5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30 년 전만 해도 브라질에서 신축되는 주택의 3 분의 2 이상은 임대주택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 수치는 고작 3 퍼센트에 불과하다. 도대체 그 시장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브라질의 여러 도시에서 법이 미 치지 않는 지역을 파벨라(favela, ‘빈민가’라는 의미)라고 부르는데, 정규 경제 체제의 엄격한 통제 범위 에서 벗어난 이곳은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파벨라에서는 임대에 대한 통제가 전혀 없다. 임대 계약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며 임대료가 지불되지 않는 경우에 세입자는 곧바로 퇴거 당한다.

일단 새로운 도시 이주민들이 이런 체제를 거부하면 그들은 법의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들만의 비정규적인 방식으로 자산을 보호하고 운영하면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법 체제에서 빌어온 규정들과 그들의 출신지에서 통용되던 관습을 적절히 혼합한 것으로 한 지역에서 선출한 권력층에 의해 시행되고 그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인정하는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이처럼 법 체제를 벗어난 사회계약은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는 않지만 아주 역동적인 영역, 즉 가난한 사람들의 중심지를 만들어낸다.

법 체제를 벗어난 영역

비록 법 체제를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도시 이주민들은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제 3 세계와 과거 사 회주의국가들에서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영역도 부단한 노동과 번뜩이는 재치를 발판으로 분주 히 돌아가고 있다. 거리에는 각종 의류와 신발에서부터 까르띠에 시계와 루이비통 가방의 모조품까지 제 조하는 가내공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또 기계와 심지어 자동차까지 생산하는 공장들도 들어섰 다. 새로운 도시 빈민들은 산업 전체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은밀한 연계를 통해 전기와 물을 공급할 체제까지도 갖추었다. 심지어 무면허 치과의사들도 버젓이 치과 시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새로운 기업가들은 합법적 인 경제 체제에 생긴 수많은 공백을 메우고 있다. 여러 개발도상국가들에서 무허가 버스와 택시들은 대 중교통의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제 3 세계 국가들에서 빈민촌 출신의 행상들은 길거리의 노점에서 수많은 건물들의 구내매점에 이르기까지 시장에 나오는 음식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1993 년에 멕시코 상공회의소는 길거리 노점상의 수가 멕시코시티에만 15 만 명, 다른 43 개 도시들에서 도 29 만 3 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영세한 가게들은 평균 폭이 1.5 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지 극히 규모가 작다. 그러나 멕시코시티에 있는 행상들이 모두 일렬로 늘어선다면 그 길이는 210 킬로미터 를 거뜬히 넘어설 것이다. 수십 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가 길거리, 집, 불법 상점, 불법 사무실, 불법 공장 등 법 체제를 벗어난 영역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1994 년 멕시코 국립 통계연구소가 무허 가 ‘군소 사업체(microbusiness)’의 수를 집계한 결과 전국적으로 총 265 만 개 업체가 산재해 있는 것 으로 밝혀졌다.

이 수치들은 모두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들 이다.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 당신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수출용 전투기 생산에 이르기 까지 비정규적인 활동이 훨씬 더 복잡하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아이티와 필리핀 같은 제 3 세계에 속한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사 회주의가 붕괴된 이후로 구소련은 그들과 똑같아 소유권이 혼란한 시대로 빠져들고 말았다. 1995 년에 발행된 『비즈니스위크』에는, 사회주의가 종식된 지 4 년 뒤 1 천만 명의 러시아 농민들 가운데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은 고작 2 만 8 천 명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또 다른 기사는 제 3 세계 국가들의 유사한 상 황을 그려내고 있다. “구소련은 개인의 소유권과 토지의 사용권 및 양도권이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고 법 에 의해 확실하게 보호받지도 못한다. … 토지의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경제에서 사용되는 메커니 즘은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고 … 정부는 국유지도 아닌 토지에 대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3 전기 사용량을 조사한 결과를 통해 1989 년과 1994 년 사이에 구소련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 활동은 총생산의 12 퍼센트에서 37 퍼센트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조사들에 나타난 비율은 그보다도 훨씬 높 은 수치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 모든 현실은 제 3 세계에서는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그저 창문을 열거나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도로 양쪽으로 빽빽이 늘어선 집들과 차고 뒤편에서 분주히 돌아가는 가 내공장들 그리고 더러운 거리를 이리저리 힘겹게 질주하는 고물 버스들을 볼 수 있다. 법 체제를 벗어난 다는 것은 때로 선진국들에서 암시장이나 빈곤이나 저개발과 같은 ‘주변적인’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법 체제를 벗어난 세계는 대체로 마피아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여겨지며, 오직 경찰과 인류학자 혹은 선 교사들만이 관심을 갖는 암울한 세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항이고 법 체제를 벗어나는 것은 표준이 되 어버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경제활동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지역의 민간 부문 (private sector)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인사들과 만나기 위해 컨설턴트들을 이끌고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호화로운 라운지를 찾는 국제적인 대행업체들은 기업가 세계의 극히 일부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제 3 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경제 세력은 폐품 수집상들과 생활용품 제 조업체들 그리고 허름한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불법 건설회사들이다. 이런 국가들의 정부가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세력을 합법적인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통합하든지 현재의 혼란스러 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든지 양자택일하는 것이다.

죽은 자본의 존재

지난 10 년 동안 우리 연구원들은 유능한 지역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카이로, 리마, 마닐라, 멕시코시 티, 포르토프랭스 등 제 3 세계 국가의 5 개 도시에서 차별적인 법 체제로 인해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는 경제영역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의 신뢰 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가장 확실한 자산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부동산이었다.

정확한 수량을 집계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한 가치를 판단하기는 더 어려운 음식이나 신발, 까 르띠에 시계 모조품 따위와 달리 건물은 절대로 숨기거나 감출 수가 없다. 이런 건물들은 그저 건축 자 재에 소요된 비용을 조사하고 다른 건물들과 비교되는 매매가를 파악하기만 하면 그 가치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건물들의 가치를 조사했다. 이처럼 조사가 허용된 국가 들에서 얻은 자료들을 출간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해당 지역 사람들과 공조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험하고 수정하기를 거듭했다.

우리는 법 체제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이 수없이 많은 것만큼이나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영역 에 건물을 짓는 방식도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확실한 사례는 국유지에 빈민촌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연구원들은 부동산법을 교묘히 회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페루의 농민들은 소유주에게서 토지를 매입해 주거 및 산업용 부지로 전환하기 위해 농업조합을 만들었 다. 합법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쉽게 양도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가 운영하는 조합에 소 속된 농민들은 불법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조각조각 세분화했다. 결국 토지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권을 지닌 농민은 거의 없었다. 포르토프랭스에서 사람들은 아무리 엄청난 고가의 자산이라도 소유권을 이전 하면서 등기소에 신고하지 않는다. 마닐라에서는 산업용 부지에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카이로에서 과거 공용주택 건설정책을 통해 지어진 4 층 아파트에 사는 거주자들은 불법적으로 건물 옥상 위로 3 층을 더 올린 후에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다. 더욱이 1950 년대 초반에 동결되어 이제 1 년 에 고작 1 달러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임대료 때문에 아파트의 합법적인 소유주들은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도록 내부 구조를 변경해 시장가격으로 임대하고 있다.

이런 주택들 가운데 일부는 불법적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법 체제를 벗어난 건물이었다. 포르 토프랭스의 가옥과 임대가 제한된 카이로의 아파트 따위의 다른 건물들은 합법적인 체제를 바탕으로 지 어졌지만 법 체제가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복잡해지면서 불법적인 형태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조사한 도시들에서 거의 모든 건물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건물주들에게 자본을 창출하기 위한 장치와 제도를 제공할 수 있는, 합법적인 구조와 법 체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분명히 누군가의 손에 증서나 일종의 기록이 있겠지만 이런 자산들의 실제 소유권은 공식적인 등기 체제를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등기소에 등록된 자료들은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유한 자산 은 상업적·경제적 측면에서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어디에 있는 무엇을 소유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고, 거래 상황을 확인하기도 어려우며, 손해나 사기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대금이 지불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사항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 도 없다. 결국 이런 국가들이 보유한 잠재적인 자산은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상 가용 자 본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거래 시장은 위축되고 침체되는 것이다.

자본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실상은 한창 개발이 진행되는 세계의 일반적인 통념과 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곳은 자산의 소유 권을 추적하고 확인해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런 자산을 보호해줄 합법적인 규정도 존재하지 않고, 자산의 잠재적인 경제적 특성들이 제대로 정리되거나 조직되지 않으며, 자산의 고정적이 고 불안정한 특성으로 인해 오해와 사기가 일어날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거래를 통해 잉 여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세계다. 요컨대, 대부분의 자산이 죽은 자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본의 가치

개발도상국가들과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의 거리에는 엄청난 규모의 죽은 자본이 늘어서 있다. 우리가 추 산한 수치에 의하면, 필리핀 도시 거주민의 57 퍼센트와 농촌 거주민의 67 퍼센트가 지니고 있는 자산은 모두 죽은 자본이다. 페루에서는 도시 거주민의 53 퍼센트와 농촌 거주민의 81 퍼센트가 불법적으로 지어 진 건물에서 살고 있다.

아이티와 이집트는 이보다도 훨씬 더 극단적인 수치를 보인다. 아이티에서는 도시 거주민의 67 퍼센트와 농촌 거주민의 97 퍼센트가 합법적인 소유주가 없는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도시 거주자의 92 퍼센트와 농촌 거주자의 83 퍼센트가 죽은 자본이나 다름없는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런 주택들의 가치는 대부분 서구의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포르토프랭스 빈민촌의 집 한 채는 고 작 500 달러이고, 마닐라의 오염된 하천 위에 지어진 오두막은 2,700 달러, 카이로의 외곽 지역에 지어진 제법 그럴 듯한 집도 기껏해야 5 천 달러 그리고 리마 중심에 위치한 언덕에 차고와 창문을 갖춘 방갈로 의 가격도 2 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주택들의 수는 천문학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그 가치 의 총합은 부자들이 소유한 자산의 총합을 훨씬 상회한다.

아이티에서 농촌과 도시에 산재한 부동산 소유권의 가치를 모두 합하면 대략 52 억 달러에 이른다. 이 수치는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회사들이 보유한 총자산의 4 배이고, 아이티 정부가 소유한 총자산의 9 배이 며, 1995 년 이후에 이루어진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158 배에 육박한다.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프랑스계 아프리카 국가로 듀발리에(Duvalier) 정권 때문에 체계적인 법 체제의 도입이 지연되었 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겪은 아이티가 예외인 경우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상이한 전통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페루의 경우를 살펴보자. 페루에서 농촌과 도시에 산재한 불법적인 부동산의 가치는 총 740 억 달러에 이른다. 이 수치는 1998 년 침체기 이전의 리마 증권거래소 가 보유한 총자산의 5 배이고, 민영화할 수 있는 모든 국영기업과 국유시설을 자본으로 환산한 가치의 11 배이며, 지금까지 이루어진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14 배에 해당한다. 당신은 페루의 경제가 고대 잉카제국과 부패한 스페인 식민지의 영향 그리고 최근에는 마오쩌둥의 노선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 센 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가 일으킨 내전으로 인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는가?

이번에는 과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전초 기지였던 필리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필리핀에서 소유권이 불확실한 부동산의 가치는 총 1,330 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수치는 필리핀 증권거래소에 상장 된 216 개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의 4 배이고, 모든 시중은행들이 보유한 예금 총액의 7 배이며, 국영기업 들이 보유한 총자본의 9 배이고,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14 배에 해당한다.

어쩌면 필리핀도 기독교가 과거 스페인 식민지들에서 번성했던 것처럼 예외에 포함될지 모른다. 그렇다 면 이집트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이집트 부동산에서 죽은 자본의 총가치는 대략 2,400 억 달러에 이른다. 이 수치는 카이로 증권거래소의 모든 주식을 합산한 액수의 30 배이고, 직 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55 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우리가 조사한 모든 국가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적 재능은 방대한 규모의 부를 창출했다. 그 엄 청난 부는 개발을 위한 대규모의 잠재적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런 자산은 정부가 보유한 자산뿐 만 아니라 증권거래소의 총자산과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을 훨씬 상회했다. 심지어 선진국들이 제공한 모든 원조 금액과 세계은행이 지불 기한을 유예한 대출금 총액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였다.

우리가 이 4 개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 3 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 전체로 확대해 연구한 결 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이런 국가들에서 도시 부동산의 85 퍼센트와 농촌 부동산의 40 퍼센트에 서 53 퍼센트는 자본을 창출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이 모든 자산의 가치를 산 출하는 작업은 대략적인 추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수치가 정확하다고 믿었다. 우 리가 추산한 결과에 의하면, 제 3 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지만 합법 적인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은 부동산의 총가치는 최소 9 조 3 천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9 조 3 천억 달러는 미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화폐의 액면가를 합한 액수의 약 2 배에 해당한다. 또 뉴욕, 도쿄, 런던, 프랑크푸르트, 토론토, 파리, 밀라노를 비롯한 세계 20 대 선진국들의 주요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모든 회사들의 자산을 합한 총액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수치다.

더욱이 1989 년 이후 10 년 동안 제 3 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 유입된 직접적인 해외투자 총액의 20 배를 훨씬 상회하고, 지난 30 년 동안 세계은행이 대출한 모든 대출금의 46 배에 해당하며, 그 기간 동안 모든 선진국들이 제 3 세계의 개발을 위해 원조한 총액의 93 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과거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 러셀 콘월이라는 연설가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수백 만에 달하 는 인파를 감동시켰다. 그는 청중들에게 숨겨진 보물을 찾아 엄청난 부자가 될 거라고 장담한 예언가의 말을 굳게 믿었던 어느 인도 상인의 이야기를 연설 때마다 즐겨 했다. 그 상인은 보물을 찾아 전세계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보물을 찾지 못하고 결국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말았 다. 거의

폐가로 변한 집에 들어서던 그는 갈증을 느끼고 마실 물을 찾았다. 그러나 우물은 흙이 덮인 채 막혀 있었고,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삽으로 새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광맥인 골콘다를 발견했다.

콘월의 이야기는 대단히 소중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제 3 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의 지도자들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굳이 외국의 정부나 국제금융기관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비록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맥 은 아닐지라도 허름한 빈민촌의 한복판에 수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자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만 약 이런 자산을 살아있는 자본으로 전환하는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엄청 난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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